본문 바로가기
등산_트레킹

순창 [용궐산] 등산 (2023.11.14) / 용여산-용골산 -용궐산의 전설을 알아보자

by 선이랑환이 2023. 11. 20.

2009년 하늘길을 만들었으며 하늘길이 있는 거대한 바위의 용여암은 용의 날개에 해당하는 자리로 암벽과 경관이 수려하여 탄성이 절로 나오고 용의 기운을 느껴 볼 수 있다

옛날에는 용여산이라 불렀다가 다시 용골산으로 불렸으며 용의 뼈에 다시 생기를 불어 넣자는 주민의 건으로 2009년에 용이 사는 궁궐이란 뜻의 용궐산이라 이름을 바꾸었다  [용궐산 입간판]

 

▼용굴

용굴산의 옛이름은 용여산으로 암릉을 뜻하며 바위산이면서도 여성스레 부드러운 산이고 용굴산 하늘길이 있는 바위는 용여암이라 불리고 용여암 아래부분에는 여근석이 있다  이곳은 용이 거처하는 집으로 길이는 10m 내외지만 3층으로 구성되어 있고 2층은 통로가 좁아 들어가기 어려우며 3층은 더욱 좁아 들어 갈 수가 없다

이곳 바로 아래에는 암자 터가 있는데 용이 노는 암자라 하여 용유암이라 불렀다 이곳 하단부에 갈라진 용알바위가 있으며 섬진강에는 요강바위가 있어 다음과 같은 전설이 이 있다.

옛날 이곳 산에 마음씨 착한 암용이 살고 있었으며, 강에는 현명한 숫 거복이가 살고 있었는데 용과 거북이는 서로가 선인이 되고자 하였다. 천년동안 선행을 베풀면 선인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고 용은 산 중턱에 용굴을 만들고, 거북이도 이곳 강가에 바위를 뚫어 집을 만들이 서로가 사랑하며 천년동안 선행을 베풀어 용은 선녀가 되었고 거북이는 신선이 되었다그 뒤 이곳 산은 용여산이라 부르게 되었고 이곳 마을은 장수한 거복이가 목욕하며 살았다 하여 장구목이라 불리게 되었다. 거북이가 살던 집 구와는 현재 요강바위라 불리고 있다.

 

▼용유암(龍遊庵)의 나주임씨의 중시조인 입문수(林文達1802-1883)의 이야기가 다음과 같이 전해져 오고 있다.

동계면 유산마을 나주임씨는 임진왜란 때 이 마을로 피난하에 살면서 수대를 무판(無官)으로 살았다고 합니다. 원래 양반의 후손으로 많은 노력을 하였으나 대과에 급제하지 못하였음을 한탄한 일문수의 아버지는 실 오수 장에서 포목장사를 하면서도 자식을 가르쳐야 한다는 일념으로 임문수를 용유암에 보내놓고 사흘이 멀다 하고 아들이 먹을 식량을 짊어지고 가서 밤늦게 글을 읽는 것을 들으면서 소리 없이 쌀을 마루에 놓고 돌아오곤 했습니다. 어느 비가 내리는 날 장사를 마치고 용유암을 가는 날이기에 쌀을 짊어지고 밤중에 올라갔는데 글 읽는 소리가 들리지 않아 임씨는 몹시 화가 났으나 이것은 아들의 잘못이 아니고 자기가 부택한 것이라 개탄하고 지붕 끝 낙숫물이 떨어진 곳에 앉아 비를 맞았습니다. 얼마가 지났을까, 아들 임문수가 문을 열어보니 아버지가 낙숫물에 끓어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놀라 뛰어 나가자 그때 아버지 하시는 말이 '아들 덕으로 양반 한번 되어 보자.' 라고 하자 임문수는 글을 읽지 않고 잠을잔 것을 후회하고 다시는 글 읽는 것을 중단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으며 문득 잠이 올 때면 아버지가 낙숫물 떨어지는 처마 밑에 꿇어앉은 모습을 떠올리며 다시금 정신을 차리고 열심히 공부를 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노력의 대가로 입문수는 대과에 급제하여 전라도사 병조정량의 벼슬을 지냈고, 병조참의를  지내는 등 아버지의 소원을 풀어준 아들로서 유산마음 나주임씨의 증시조가 되었답니다. 그 후로 용유암은 유명한 암자가 되었고 용유암에서 공부하면 과거에 급제한다 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공부했다는 말이 전하여 올만큼 유명한 암자였으나 어느 때 소실되었는지 알 수 없으며 현재는 그 전설만 전하여 올 뿐입니다.

 

 

▼요강바위

요강바위는 오랜 세월이 빚어낸 섬진강 일원 최고의 조형물로 가로 2.7m, 세로 4m, 높이 2m, 무게 15톤 가량의 바위로, 가운데에 구멍이 뚫린 모양이 마치 커다란 요강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예로부터 아이를 못 낳는 여인이 요강바위에 들어가 치성을 드리면 아이를 얻는다는 전설이 있어 이 지역 사람들이 신성시하는 바위로 한국전쟁 때는 마을 주민이 요강바위 속에 몸을 숨겨 목숨을 건졌다는 일화도 있다.
1993년에는 요강바위가 수억 원을 호가한다는 소문이 나면서 도난을 당하기도 했으나, 마을주민들의 각고의 노력으로 1년 6개월여 만에 되찾기도 했다.
섬진강의 거센 물살이 다듬어놓은 기묘한 바위들 가운데 놓여있는 요강바위는 수호신처럼 마을을 지켜주고 있다.

 

댓글